인티파다는 봉기·반란·각성 등을 뜻하는 아랍어이다.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이 이스라엘만 국가로 인정함에 따라 요르단강 서안, 가자지구, 동예루살렘 등지에서만 살게 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통치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킨 것을 말한다.
1차는 1987년 이스라엘군 지프차에 치여 팔레스타인인 4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라의 한 검문소를 습격하면서 시작되었다. 이스라엘과 인접한 아랍국가를 본거지로 하여 이루어지던 대(對)이스라엘 저항운동이 점령지 내부에서 대중운동 형태로 처음 나타난 사건이었다.
비무장 시민운동이었으며, 1993년까지 계속되었다.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고, 그 결과 1995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오슬로에서 평화협정을 맺었으며, 199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면서 일단락되었다.
2 차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국가로 인정하고 몇 개의 지역을 그 영토로 인정한다는 평화회담이 진행 중이던 2000년 9월에 일어났다. 당시 이스라엘의 야당 당수였던 샤론이 동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사원을 방문하자 이에 분노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일으킨 작은 봉기를 이스라엘 군대가 진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.
이 사건으로 오슬로 평화협정은 깨졌고,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다시 점령하였다.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비폭력적인 인티파다를 호소했지만 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테러, 이스라엘의 보복이 감행되었다.
2003 년 4월 팔레스타인 정부구성 및 총리 임명 후 6월에는 휴전하여 이스라엘 측은 북쪽에 있는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했고,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자치지구를 통제하기 시작하였다. 그러나 2003년 8월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한 데 대해 이스라엘은 자치지구의 봉쇄 및 탄압강화, 공습, 가옥파괴 등 형태로 가혹하게 보복함으로써 사태가 악화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