오전에 차를 끌고, 배달도 할 겸 의정부에 갔다. 벽제를 지나 송추를 지나 가는데 들판이 슬슬 익고 있더라. 창문을 활짝 열고 달렸다. 에어컨 없이는 아직 조금 덥지만 그럭저럭 딱 좋은 기온이었다. 교구청 사무처에 미사책 커버 한 박스를 맡겨놓고,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합정으로 나왔다.
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하려는데 예전에 같이 일하던 주간님이 들어오시었다. 회사에서 깽판치고 쫓겨났기 때문에 상큼발랄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빵끗 웃으며 인사했다. 오히려 주간님이 나보다 더 버름했는지도 모른다. 한 번도 웃지 않았으니까. 잘 지내냐고 물으시어 잘 지낸다고 대답하면서, 잘 지낸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했다.
사실 몇 주 전에는 같은 자리에서, 그 회사의 자문 비슷하게 일하던 분을 만났더랬다. 그때는 내가 먼저 잘 지내시냐고 했더니, '잘 지내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, 자기야말로 잘 지내야지. 유학 안 갔어?'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. 원래 그런 성격인 건 알지만 가시가 있는 말투라 그랬는지, 저도 잘 지내요 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.
지난 주에 받은 신부님 메일에도 잘 지내냐는 말이 있었다. 성가대는 재미있냐고, 뭘 하든 늘 기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고. 그래서 답장에 이렇게 적었다. '다행히도, 제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. 마음이 기쁘지 않을 때에도 하느님은 곁에 계시니까요.'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, 내가 나를 자꾸만 행복하다, 잘 지낸다고 하는 건 오기로 말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.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면 그 중 가장 큰 파이는 바로 신부님이었으니까.
옆 테이블에서 출판사 사람들과 회의를 하던 주간님이 또 보자, 하고 사라진 뒤 골목 건너편 카페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.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3단 도시락에 미니 돈까스랑 매운 오징어 볶음이랑 파래 볶음이랑 오이 절임이었던가. 밥이랑 반찬을 깨끗이 비우고 물을 두 잔 마셨다. 창 밖에 널어놓은 런치매트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렸다. 손님이 나 혼자 뿐이라, 놀러온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던 주인 언니가 노란 복숭아 한 쪽을 잘라주었다.
험난한 첫 직장이었던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, 지금까지 별로 내보일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. 외주로 일한 경험이 조금 더 생겼을 뿐, 나는 여전히 비고용 상태의 어설픈 스물여덟 살이다. 책도 쓴다 쓴다 하면서 몇 달째 쓰는 중이고, 성물방 역시 관심없는 사람에게는 별것도 아닌 일일 뿐이다. 작년까지 미친듯이 하던 단체를 버리고 성가대에 들어간 건 있을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고 성가대는 아직도 나를 성가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. 그리고, 그렇다. 유학도 아직 못 갔다.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기도 했고, 붙었대도 돈이 없었다.
그런데 오늘 도시락을 먹으면서 확실히 알았다. 나는 잘 지내고 있으며, 행복하다고 말해도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. 무슨 일을 해서 어떤 성과를 냈든 누구와 싸워서 얼마나 상처받았든 당신이 나를 보고 뭐라고 생각하든, 그 무엇과도 관계없이, 내가 행복하다는 '사실'은 언제나 너무나 견고하게 나를 감싸고 있다. 봄부터 나를 괴롭히던 관절염은 나을 것이다. 쓰네 마네 하던 책도 마저 쓸 수 있을 것이다.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곧 다시 사람을, 무조건,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.